용인법무법인 [점선면]“남자는 이래야지”라는 말이 위험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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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민종 작성일26-01-11 06:56 조회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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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맨박스 지수가 높은 사람은 자살 충동이 6.3배 더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습니다.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국제 비영리 단체 ‘이퀴문도’(Equimundo)가 지난해 6월 발간한 ‘2025 미국·영국 남성 실태조사’에 담긴 내용입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남성 10명 중 8명은 ‘가족 부양’과 ‘침묵해야 한다’는 등 전통적 남성성을 강요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퀴문도는 맨박스 연구 등을 통해 젠더 평등 및 건강한 남성성 변화를 이뤄내는 걸 목표로 만들어진 단체인데요. 오늘 ‘에디터픽’은 이퀴문도의 디지털 전략 전문가 캐롤라인 헤이스를 인터뷰한 기사를 전해드립니다. 김송이 기자가 캐롤라인 헤이스와 비대면 인터뷰를 하며 ‘맨박스에 갇힌 남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사회가 남성에게 오랫동안 요구해온 전통적인 남성성의 틀을 맨박스라고 부릅니다. 강해야 하고, 감정은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가족을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기대들이 여기에 들어가죠. 그런데 이런 기준에 스스로를 가둔 남성들일수록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이 눈에 띄게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 특히 주목됩니다.
“이른바 맨박스에 갇힌 남성들은 조사 시점 기준으로, 직전 2주 동안 자살을 생각한 비율이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6배 넘게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건 남성성 규범이 여성에게 가해를 하는 문제뿐 아니라, 남성 본인의 정신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걸 보여줍니다.”
- 흔히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에서 오히려 여성혐오 콘텐츠가 더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는 뭘까요?
“미국이나 독일, 영국 같은 나라들을 보면요.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는 남성들 입장에선 안정적인 직장이나 집이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여성혐오 콘텐츠는 ‘여성이나 성소수자가 네 일자리를 빼앗아갔다’는 식의 이야기를 던집니다. 그 서사가 퍼질 수 있는 토양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겁니다.
게다가 젊은 세대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배우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공 공간에 대한 정부 투자가 크게 줄었습니다. 청소년 스포츠 프로그램이나 공공도서관, 방과 후 활동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죠. 그러다 보니 많은 소년들이 정체성이나 소속감을 온라인에서 찾고 있습니다. 2023년 미국 남성 실태조사를 보면, 미국 남성의 48% 가까이가 ‘온라인 속 삶이 오프라인보다 더 가치 있다’고 답했어요. 또 10대부터 20대 초반 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3분의 2가 게임 속 삶이 더 ‘진짜 같다’고 말했습니다.“
- 한국에서 불거진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도 떠오릅니다.
“작년 여름에 한국에 갔을 때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해자의 평균 나이가 14~15세라고 하더군요. 이 소년들이 하루아침에 여성혐오 콘텐츠를 접하고, 갑자기 젠더 폭력을 저지르게 된 건 아닐 겁니다. 문제는, 구조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도록 밀어붙이는 환경 속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 그 ‘특정한 행동을 부추기는 환경’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건가요?
“저희 이퀴문도는 전통적인 남성성 규범과 성희롱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 이른바 맨박스를 17가지 태도로 나눴어요. 예를 들면 ‘남성이라면 데이트 관계에서 돈 문제의 최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동성애자 남성은 진짜 남성이 아니다’, ‘존중받으려면 폭력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같은 생각들이죠. 미국 남성들 가운데 이런 태도에 가장 많이 동의한 상위 20%를 ‘맨박스에 갇힌 남성’이라고 정의했는데요. 이들 중 71%가 성희롱 가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이런 태도에 거의 동의하지 않은 ‘맨박스 밖의 남성’은 7%에 불과했어요. 남성성 규범이 실제 젠더 폭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 소년들이 여성혐오 콘텐츠에 빠져들게 되는 공통적인 특징도 있나요?
“문제가 되는 콘텐츠들은 겉으로 보면 굉장히 실용적인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연애 방법, 자기관리, 돈 관리 같은 누구나 궁금해할 주제들이죠. 그런데 점점 ‘네가 힘든 건 여성이나 성소수자, 이민자 때문’이라며 분노의 대상을 특정 집단으로 돌립니다. (여성혐오 인플루언서로 알려진) 앤드류 테이트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 중에도 ‘난 돈 관리 영상만 본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 깔린 여성혐오적인 가치관에 자연스럽게 물들게 됩니다. 아직 뇌가 발달 중이고, 주변에 비판적으로 이야기 나눌 어른이나 또래가 없는 소년들에게는 그 영향력이 훨씬 더 큽니다.”
- 관련 연구 결과도 있나요?
“있습니다. 남성 청소년으로 설정한 유튜브나 틱톡 계정을 만들어 분석한 연구가 있는데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켄트대 연구진이 가상 계정을 만들어 분석했는데, 처음에는 외로움이나 자기계발 같은 일반 영상이 추천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을 비난하는 콘텐츠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며칠 만에 추천 비율이 13%에서 56%까지 뛰었죠. 또 남성으로 설정된 프로필은, 일부러 그런 콘텐츠를 찾지 않아도 평균 23분 만에 여성혐오 콘텐츠에 노출됐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 그렇다면 유튜브 같은 플랫폼은 왜 강하게 제재하지 않는 걸까요?
“유튜브도 수익 창출을 막는 등 나름의 대응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플랫폼의 수익 구조 자체가 ‘자극’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문제의 콘텐츠 상당수는 이용약관을 노골적으로 어기지 않아요. 욕설 대신 ‘여성은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처럼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미국에서는 ‘여성 참정권(수정헌법 19조)을 폐지해야 한다’는 콘텐츠도 확산됐는데, 이것 역시 약관 위반은 아니었습니다. 자극적이고 분노를 유발하기 때문에 빠르게 퍼졌고요. 조회수와 댓글 수가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는 이런 콘텐츠가 반복 생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 인공지능(AI) 기술이 여성혐오를 더 부추긴 사례도 있나요?
“AI로 가짜 나체 사진을 만들어주는 앱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여성 사진에만 작동하도록 설계돼 있었고, 남성 사진을 넣으면 자동으로 여성 신체로 바뀌는 식이었죠. 최근에는 AI 친구 앱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주 이용자가 젊은 남성들인데요. 조사 결과를 보면 나이가 어릴수록 AI를 연애나 친밀한 관계의 대체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남성의 외로움이 그대로 수익 모델이 되고, 친밀감이 상품처럼 거래될 위험이 있는 거죠.”
-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만의 현상일까요?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옵니다. 남성 자살률, 학업 중단, 건강 문제 같은 지표들이 자주 언급되죠. 우리는 많은 젊은 남성들이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고 느끼며 좌절한다고 봅니다. 문제의 핵심은, 남성에게 특정 방식으로 살아가라고 요구하는 이 성별화된 시스템 자체입니다. 전통적 남성성 규범은 늘 ‘혼자 버텨라, 감정은 드러내지 마라’고 말해왔죠. 거기서 벗어나면 조롱과 낙인이 따라옵니다.”
- 그래서 페미니즘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남성들이 겪는 고통을 ‘차별’로 느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근본 원인은 여성이나 페미니즘이 아니라, 남성에게 씌워진 남성성 규범입니다. 일부 단체들은 ‘남성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앞세워 그 책임을 여성에게 돌립니다. 하지만 여성이 잘 살아서 남성이 힘든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남성 자살률이 더 높은 건, 총기처럼 치명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입니다. 자살 시도 자체는 여성 쪽이 더 많습니다.”
- 한국 정부도 남성 차별 문제를 들여다보겠다고 했습니다. 성평등가족부에 성형평성기획과도 신설했습니다.
“단일 지표만 보면 본질을 놓치기 쉽습니다. 미국에서도 남성이 여성보다 학교 이탈률이나 높거나 학사 학위를 끝까지 이수하지 못한다는 데이터가 있는데요. 이를 이해하려면 남성과 여성이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그 직업의 임금 구조가 어떤지도 함께 봐야 합니다.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교육·돌봄 분야는 사회적으로 필수적인 노동인데도 임금은 훨씬 낮습니다. 정책이 남성의 교육 진입률을 문제 삼는다면, 동시에 왜 돌봄 노동이 이렇게 저평가돼 있는지도 함께 물어야 합니다.”
남학생을 위한 페미니즘 책 <맨박스, 페미니즘>을 쓴 권재원 교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20대 남자를 자유롭게 만들 힘은 여자를 윽박지르거나 여성의 권리를 빼앗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그 힘은 남성들을 가부장과 남자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 남성들을 힘들게 만드는 건 페미니즘이나 여성이 아니라 가부장제와 그 수혜자인 가부장이라는 점을 직시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남성 해방’이 아닐까요?
“하나를 보더라도 입체적으로” 경향신문 뉴스레터 <점선면>의 슬로건입니다. 독자들이 생각해볼 만한 이슈를 점(사실), 선(맥락), 면(관점)으로 분석해 입체적으로 보여드립니다. 매일(월~금) 오전 7시 하루 10분 <점선면>을 읽으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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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자유롭게 도전하는 나라, 인재가 모이는 대한민국.’
인공지능(AI) 기술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미·중 기술패권 경쟁시대, 정부의 정책 메시지를 담은 슬로건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등 주무 부처는 잇따라 ‘첨단 과학기술 인재 전략’을 발표했다.
정부 인재 정책의 핵심은 ‘AI 인재를 포함한 이공계 인재 양성·유지·유치 전략’이다. 뒤집어보면 인재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해외로 떠나며 한국으로 오지 않는 현실을 인지한 것이다. 예산으로도 정부 의지가 읽힌다. 올해 AI 관련 정부 예산은 10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배 가량 늘었고,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35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9.9% 증액됐다.
정부는 이공계 대학생 국가장학금 수혜율 60%까지 확대와 청년과기인 도약 적금 신설, 국가과학자 매년 20명 선정 등 이공계 보상 및 대우를 개선하는 정책을 내놨다. 연구환경 개선을 위해 개인 연구기간을 1~3년에서 3~5년으로 연장하고, 10년 이상 장기 연구가 가능하도록 연구비 지원체계를 손보기로 했다.
인재 양성안은 양적 확대에 비중을 뒀다. 통상 8년 이상 걸리는 학·석·박사과정을 5.5년 만에 밟을 수 있는 신속 처리제를 신설한다. AI 중심 학과 교육과정 대학과 대학원의 정원을 늘리고 과학고 및 영재학교에서 AI 입학 전형을 확대한다. 한 전문가는 “어느 분야든 AI를 접목해 인재를 키울 수 있지만 지금은 국내에 오롯이 AI만 전공하는 전공자들이 양적으로 늘어나야 혁신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AI 학과 신설이나 증설이 곧 AI 인재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며 양적 확대만으로는 인재 양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해외 인력을 한국으로 들어오게끔 한다는 구상도 밝혔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현재 해외 한인 과학자는 약 2만5000명, 한인 석박사과정 유학생은 5908명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해외 인재 2000명을 유치하되, 그중 70%는 재외 한인 과학자 복귀로 구성키로 했다. 유치 연구자에게는 비자, 채용방식, 조세, 자녀교육, 거주 등 종합 패키지를 지원한다.
첨단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인재의 중요성은 일본의 사례로 확인된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이후 반도체 산업이 쇠락하면서 전문 인력이 국외로 빠져나갔다. 이런 공백을 메울 인력을 키우지 않고 있다가 지금 당장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키고 싶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은 첨단 과학기술 인재를 앞다퉈 끌어들이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해 11월 발행한 ‘AI 패권 시대 인재전략: 중국의 AI 산업생태계 구축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AI 논문 중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3.2%로 미국(9.2%)을 앞선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10년간 중국의 AI 연구자 규모는 연평균 30%의 성장세를 보이고, 세계 상위 100명 AI 전문가 중 절반 이상이 중국계에 속한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국은 첨단 과학기술 인재에 대한 존중 및 보상이 높고 지방정부, 대학, 연구기관, 기업들이 역량을 모으는 협력체계가 잘 구축돼 혁신적인 생태계를 만들었다”고 했다.
한국은행 보고서(BOK 이슈노트 2025-31, 2025·11, 최준 외)에 따르면 미국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이공계 박사 인력 규모는 2010년 약 9000명에서 2021년 약 1만8000명으로 2배로 증가했다. 현재 미국에서 유학 중인 A씨는 “저는 한국 기업에서, 친구는 메타에서 인턴을 했다. 비교해보니 한국 기업에선 연구 결과물보다 어떻게 수익을 낼지에 관심이 크다는 게 달랐다. 윗사람 눈치 보는 기업 문화가 있어서인지 선진기술 연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여 부연구위원은 “미국은 산업과 교육 현장의 간극을 잘 메우고 있다. 학생들이 산업 현장에 조기 투입돼서 기업의 인프라 토대 위에서 산업 현장 이슈들을 조기에 학습·해결함으로써 산업계에서 필요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실증 중심의 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의 지속성과 유연성을 주문했다. 이종식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인재 ‘유출’이 아닌 ‘순환’으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재를 국내에서 다 소화해야 된다는 건 비현실적인 접근”이라며 “중국으로 가는 걸 막을 필요가 없다. 중국 돈으로 연구를 한 다음 한국 과학계에 줄 수 있는 것들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기초과학 지원은 ‘중국식 모델’보다 ‘서구식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산업 생산이나 국가의 전략적 필요와 무관한 기초 학문이나 혹은 지성주의적인 추구를 잘해왔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며 “서양 국가에는 정말 ‘무용한’ 학문을 했던 12세기 대학에서부터 기원한 문화적 전통이 있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에서만큼은 ‘돈이 되는 학문’과 ‘국가가 원하는 학문’을 넘어서는 영역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기업, 학계,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여 부연구위원은 “AI 모델 개발 인재, AI 응용 인재 등 인재 유형을 세분화하고 거꾸로 어떤 주체들이 양성할지 선정하고, 기관들이 어떻게 인재를 유입할지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 현장에서 실체적 수요에 맞게끔 인재를 키워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직업의 미래> 등에서 ‘인재’를 강조해온 미래학자 서용석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기업과 학계 모두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학계는 기업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 것이고, 기업은 우수한 인재들을 저비용으로 가져다 쓰면서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며 “인재는 목초지의 소와 같아서, 좋은 목초지를 따라서 이동하는 거라고 하더라. 목초지를 잘 가꿔야 그 소가 잘 크는 것처럼 인재도 그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 교수는 이공계 인재 정책 방향과 관련해 “경제적 보상이나 직업 안정성 등을 포함해서 과학자들이 존중받고 멋져 보이는 사회 서사가 있어야만 인재들이 이공계에 진입할 것”이라며 “사회 전반적으로 과학기술계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지난 정부에 이어 현 정부도 의료개혁 추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정부는 지역의료·필수의료 공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지역의사제, 의과대학 증원, 공공의대, 주치의제 등 여러 정책을 언급하고 있다.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의정 간 대립 구도가 올해도 이어질 불안감이 있다.
의료계 이슈는 비단 의사와 보건복지부 문제만이 아니다. 교육부가 책임져야 할 이슈도 샴쌍둥이처럼 연결돼 있다. 의료정책 변화로 의대 선발 방식이 흔들리는 순간 고교 선택과 과목 설계, 입시 전략이 함께 요동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지난해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역의사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지역의사법)이다. 지역의사제란 지역 의대 졸업생을 해당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한 제도다. 기존 의대 정원 내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 전형으로 선발하되 구체적인 비율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지역의사 선발 전형은 빠르면 2027학년도, 늦어도 2028학년도부터 시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와 지자체는 주거지원, 직무교육, 경력개발 등 처우 개선뿐 아니라 교육·연구 기회 확대, 지역 국립대병원 수련, 해외연수 등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혜택이 큰 만큼 지원자가 얼마나 몰릴지, 그리고 그 선택이 ‘정착’으로 이어질지 지켜볼 대목이다.
지난해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의 발언도 교육계를 술렁이게 했다. 차 위원장은 향후 의대 입시에서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분야와 의과학 분야, 일반 분야를 분리·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필수의료 전공으로 입학한 학생에게 전공의 과정까지 전공 변경을 제한하는 ‘족쇄’를 채워서라도 필수의료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는 그간 의대 진학이 원천 봉쇄됐던 영재학교 학생의 의대 진학 허용부터 군 면제까지 포함돼 있어 더욱 논란이 예상된다.
증원과 감축을 오가며 홍역을 치렀던 의대 정원 문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12월30일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가 열렸지만 2027년 이후 정원 규모는 추후 논의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확인했다. 당장 내후년 입시를 치러야 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은 자신이 대학에 갈 때 의대 정원이 몇명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역의사제와 의대 분리 선발 방안, 의대 정원 문제 모두 소위 ‘메디컬 라인’(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최상위권을 뜻하는 말)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무엇보다 수험생과 학부모를 불안하게 하는 건 불확실한 의료개혁과 교육정책의 디테일이다. 예를 들어 지역의사제는 기존 입시체계와 충돌하는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가장 큰 의문은 신설될 ‘지역의사 선발전형’과 기존의 ‘지역인재 전형’의 관계다. 법률안에 지역의사 선발전형 지원 자격은 해당 의대가 소재한 지역(또는 인접 지역)의 ‘중학교 및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하며 재학 기간 내내 그 지역에 거주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이는 기존 지역인재 전형보다 훨씬 강화된 것이다. 현행 지역인재 전형은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만을 요건으로 하거나 2028학년도부터 중학교 요건을 두더라도 ‘수도권 이외 지역’으로 범위를 넓게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수도권 출신 학생은 지역의사 전형에 원천적으로 지원할 수 없는지, 지역의사 전형의 정원은 기존 일반전형이나 지역인재 전형의 몫을 떼어오는 것인지, 아니면 순증(純增) 되는 인원인지 등 혼란스러운 점이 산적해 있다. 만약 기존 정원을 쪼개는 방식이라면 의대 진입 장벽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백년지대계여야 할 교육정책, 특히 최상위권 입시 향배를 가를 의대정책이 매번 안갯속을 걷고 있다. 의료개혁 명분에는 공감하지만 정교하지 못한 정책은 입시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킨다. 정부는 하루빨리 명확한 선발 규모와 자격 요건, 기존 전형과의 관계를 정리해 수험생에게 예측할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수험생은 정책 불확실성을 감내해야 할 희생양이 아니다. 의료계와 교육계 모두에서 정부의 현명한 정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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